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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3.1 민속 문화제의 뻥튀기 장사추억

뻥만드는 사람들 2025. 2. 27. 14:07

2월이 끝나가고 봄이 올 것 같지만, 여전히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이맘때면 항상 뻥튀기 장사를 시작한 첫해, 2.28 민주 운동 기념일과 3.1민속문화제 기념일 행사가 열리는 경남 경산에 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1997년, 제가 42살에 겪었던 IMF 위기는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게 했습니다.

저 역시 세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추위를 견디며 장사해야만 했습니다.

경산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정말 추웠던 기억뿐입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있었고, 도로는 얼어붙어 있었으며, 차에서 자면서 아침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가스렌지 위에 뻥튀기 기계 솥단지를 구워 오한을 견디며, 눈앞의 현실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캄캄한 새벽, 지나는 사람은 전혀 없고, 주변에는 몇 대의 노숙 차량들만 띄엄띄엄 있었습니다.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자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새로 사귄 상인들과 술을 마시고 포터 차량 앞자리에서 누워 잤는데, 한밤중에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갔을 때 얼마나 추웠던지 이빨이 다다다다 떨리고, 온몸이 와 다다다다 떨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온몸이 흔들리는데 마치 세상 전체에 지진이 일어나 천지가 흔들리는 줄 알았죠.

사방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깜깜한 새벽이었고, 주변에는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변엔 그저 몇 대의 노숙 차량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추위는 더 심해졌고, 차 안에서 버티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손발은 얼어붙고, 몸은 떨려왔지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버텨냈습니다.

그 추위와 싸워가며 장사한 그 시절이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어려움들도 추억으로 남게 되더군요.

당시에는 IMF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어려운 시절이었고, 저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초등학교 3학년의 세 자녀를 둔 아버지였습니다.

아이들은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나이였고, 저는 그들을 위해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40살이 다 되어가니 참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었지요.

지금은 뻥튀기 장사하시는 분들을 위한 기계 판매와 새로운 창업 상담, 기계 수리, 그리고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뻥튀기 쌀을 택배로 판매하는 사업자로 성장했습니다.

큰 욕심을 버리고, 흘리는 땀만큼이라도 벌어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고생했던 힘든 시절의 어려웠던 기억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쌓아온 경험들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때로는 실패도 있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경기는 자꾸만 어려워져 가지만, 어떻게든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꿈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따뜻한 햇살과 함께 우리 삶에도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쌓아온 경험들이 우리에게 큰 자산이 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를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특히, 영산 3.1민속문화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시작하는 축제 행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이 저의 이야기를 통해 힘과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